드라마 제작 이어 예능 제작도 힘들다…음악오디션 범람도 그런 여파[서병기 연예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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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17:51
드라마 제작 이어 예능 제작도 힘들다…음악오디션 범람도 그런 여파[서병기 연예톡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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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얼마전 드라마 주연배우의 출연료가 10억까지 올라가는 등 제작비의 수직상승으로 드라마 제작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이에 따라 한국방송영상산업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음이 지적된 적이 있다.
드라마 제작뿐만 아니라 예능 제작도 힘들다. 최근 몇년 사이 방송 예능프로그램 제작의 변화중 하나는 제작비의 마련문제다. 예능 PD가 참신한 기획서를 국장이나 EP 등 간부들에게 제시하면 상사들이 하는 첫 마디가 “제작미는 마련할 수 있지?”라는 것이다. 예능 제작 비용을 예능 PD가 직접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이처럼 방송국의 제작비 사정이 여의치 않다.
이렇게 된 데에는 지상파와 케이블 예능의 위상이 달라진 것과 관련이 있다. 과거에는 예능을 만들어 히트하면 광고가 붙고, 협찬도 따라와 제작비 회수가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상파와 케이블에서 예능을 히트시키기도 힘들고, 히트해도 광고 수익으로 제작비를 건지지 못한다. 매체와 플랫폼이 다변화되면서 광고시장이 축소되고 반대로 제작비는 더욱 상승하는 구조에서 예능 제작이 더욱힘들어졌다. OTT 예능의 경우, 회당 출연료가 1억원에 육박하는 예능인도 있다.
그래서 지상파와 케이블, 소위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음악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투자자가 존재한다. 제작비 마련이 일반 리얼리티, 버라이어티 예능보다 쉽다. 투자자가 존재한다는 말은 투자비 회수가 가능한 구조라는 말과 동의어다.
음악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투자한 사람, 제작비를 지원한 사람이 프로그램 종영후 탄생한 ‘탑7~탑10’들로 전국 투어를 돌고, 일정 기간동안 행사로 제작비를 뽑아내는 구조다.
음악 오디션 예능에는 트로트, 일반 가요, 아이돌 음악 등이 있는데, 최근에는 트로트 프로그램이 선호되고 있다. 물론 트로트 오디션이라고 해서 투자액을 쉽게 뽑아낼 수 있지는 않다. 일반가요 오디션은 ‘싱어게인’ ‘오빠시대’ 등이 있다. 아이돌 오디션은 최근에는 방송국뿐만 아니라 제작사가 함께 들어와, 우승팀을 그 제작사에서 론칭시키는 구조가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SBS ‘라우드’는 JYP엔터테인먼트와 피네이션의 보이그룹 선발 이벤트로 치러졌다. 엠넷이나 Tvn 등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 경험이 많은 방송국들은 이 방식을 원한다. 아이돌 그룹 제작만은 대기업 논리가 안통했지만, 이제는 아이돌도 대형 제작사의 손길이 더해지면 쉽게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것. 하이브 등이 갈수록 아이돌 그룹 제작에 유리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방송국의 예능 제작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 기업은 예능 프로그램에 광고를 주지 않고, KBS 등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들은 과감하게 예능 편성을 할 수가 없다. 예능의 재방송도 많아지고 있다. K-콘텐츠 강국이 이러면 안된다.
방송국이 예능 제작비를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게 어렵다면 투자할만한 곳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콘텐츠 투자 중 가장 꺼리는 곳이 예능이다. 스포츠는 스폰서가 투자를 하면 선수 옷이나 모자, 경기장 입간판 등에 스폰서 기업이나 제품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예능은 설령 투자를 해도 상호, 상품명을 모두 가려야 한다. 투자할만한 매력을 찾을 수 없다. 광고주의 광고비 집행은 이런 규제가 거의 없는 유튜브 등에 다 가버린다. 유튜브에서는 술을 마실 수 있고 제품명을 말해도 된다. 레거시 미디어와 유튜브의 규제 비대칭이 너무 심하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겨우 협찬이 들어온 상품을 소화하기 위해 출연자들이 어색한 연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역가왕’이나 ‘미스트롯3’의 매회 첫 장면은 “언니야, 서바이벌 노래 소화하느라고 피곤하지. 이것 함 마셔봐”로 시작한다. 아니면 안마의자 같은 곳에 누워, "이거 우리 집에 가져다 놓고싶다"라고 말한다. 참으로 어색한 장면을 계속 봐야하는 상황이다.
이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차제에 기업이 효율적으로 예능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 첫번째는 관명(冠名)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기업이 관명비(冠名費)를 홍보, 마케팅비로 쓸 수 있게 해야 한다. 관명비는 프로그램 제목 앞에 특정 이름을 넣을 수 있는 비용을 말한다. 보통 기업명이나 그 기업에서 출시한 상품명을 관명으로 사용한다. (지하철을 관리하는 공기업에서 역 이름을 팔아 돈을 마련하는 것과 비슷하다. 9호선 가양 역은 괄호안에 부민병원이 들어가 있다.)
관명 제도는 중국 등 외국에서는 활발하게 시행되는 제도다. 우리나라도 과거 한동안 이 방식을 썼다가 없어졌다. 예능 프로그램 편성이 확정되면 '관명'에 참가할 기업의 신청을 받아 입찰을 진행한다. 예능 프로그램이 성공해 시즌2가 제작되면 관명비는 크게 올라간다. '아빠 어디가'의 중국판인 '빠빠 취날'(후난TV)은 시즌2에서 관명비가 10배 이상 뛰었다.
관명 제도는 위축된 예능 프로그램 제작의 활로를 마련하려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다른 방식도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것은 투자자에게 투자에 상응하는 메리트를 제공해야 하는데, 지금 예능은 투자자가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투자처다. 그러니 재기발랄한 예능 PD와 작가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는 묻혀버리고 만다. K-콘텐츠의 명성을 이어가려면 취약한 생태계의 외과수술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