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페디와 비교되다니… KIA 인내심이 낚은 거물, 크로우 기대 폭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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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7 17:51
감히 페디와 비교되다니… KIA 인내심이 낚은 거물, 크로우 기대 폭발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3년 시즌을 앞두고 에릭 페디(31‧시카고 화이트삭스)가 NC와 계약했다는 공식 발표가 나왔을 때, 리그의 많은 관계자들과 팬들은 그야말로 깜짝 놀랐다. "이 선수가 왜 한국에 왔지"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성공 여부를 떠나 큰 관심이 몰리는 건 당연했다.
그럴 만도 했다. KBO리그 구단들은 신규 외국인 선수 계약 상한액(100만 달러) 제도에서 좋은 외국인 선수를 데려오기 어렵다고 푸념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자신들의 보험을 위해 투수들을 죄다 묶었다. 기본적인 시세 자체가 올랐다. 이적료를 줘야 하는 40인 내 선수들은 100만 달러 상황에서 영입도 어려웠을 뿐더러 아예 풀어주지도 않았다.
그런데 페디는 2022년까지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 뛰던 선수였다. 페디가 미국 구단으로부터 메이저리그 보장 계약을 제안 받지 못한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보다 외국인 선수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쓸 수 있는 일본 구단과 경쟁도 이겨낸 성과였다. 나머지 9개 구단 스카우트들마저 놀랐을 정도였다.
물론 경력은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굳이 한국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탱킹' 팀이었던 워싱턴이 아니었다면 풀타임 선발로 뛰지 못했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선발로 뛰던 선수였고, 한때 팀을 대표하는 유망주 출신이기도 했다. 페디의 성과로 메이저리그와 KBO리그의 수준 차이를 명확하게 엿볼 수 있을 것이라는 평가까지 나왔다.
하지만 페디는 이미 업그레이드가 된 상태였다. 운동하는 트레이닝 센터를 바꾼 페디는 비시즌 신체 개조 및 자신의 기술적 향상을 위해 노력했다. 몸을 만드는 법을 바꾸고, 스위퍼를 연마하며 자신의 레퍼토리에 추가했다. 그렇게 준비된 페디는 잘 알려진 대로 2023년 KBO리그를 '폭격'했다. 단 한 시즌만 뛰었을 뿐인데 KBO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외국인 투수 중 하나로 남았다. 안정된 선발 기회에서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실험하고 보여주면서 개인적으로도 경력의 큰 전환점을 만들었다.
페디는 2023년 시즌 30경기에서 180⅓이닝을 소화하며 20승6패 평균자책점 2.00, 209탈삼진이라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뽐냈다. KBO리그 외국인 선수 역사상 첫 트리플크라운(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을 기록하며 리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0.207의 피안타율, 0.95의 이닝당출루허용수(WHIP)는 페디의 압도적인 투구를 대변하고 있었다. 페디가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에 오른 건 이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 페디의 변신과 진화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에 바로 들어갔다. 여러 팀들의 관심을 받은 가운데 결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2년 총액 1500만 달러에 계약하고 한 시즌 만에 미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에 오기 전 받았던 연봉이 200만 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으니 페디는 성공적인 1년을 보낸 것이다.
2024년 시즌을 앞두고 KBO리그 10개 구단은 죄다 '제2의 페디'를 찾아 나섰다. 그리고 어쩌면 끝자락에 등장한 이 이름이 페디를 가장 연상시킨다고도 할 수 있다. 다른 팀들이 모두 외국인 투수를 확정할 때 홀로 시장에 남아 장고를 거듭하고 있었던 KIA는 7일 우완 윌 크로우(30)와 계약을 공식 발표했다. 계약금 20만 달러, 연봉 60만 달러, 인센티브 20만 달러 등 총액 100만 달러를 꽉 채웠다.
KIA는 크로우에 대해 '메이저리그에서는 통산 94경기(선발 29경기)에 출장해 10승 21패 16홀드 5세이브 평균자책점 5.30을 기록했으며, 마이너리그에서는 75경기(선발 59경기)에 나서 21승 16패 1홀드 평균자책점 4.01을 기록했다. 특히 지난 2021년 메이저리그에서 25경기에 선발로 나서며 전 소속팀인 피츠버그 파이리츠 선발 로테이션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서 '올 시즌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에서 5경기에 출장, 1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4.66을 기록했으며, 마이너리그에서는 17경기(선발 3경기)에 나서 3승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이미 페디라는 너무 충격적인 사례가 있어서 그런지 당시만큼의 흥분은 아니지만, 그래도 크로우의 영입은 KIA 외국인 전략의 성공이라는 평가가 많다. 역시 메이저리그 경력이 화려하고, 한국보다는 미국이나 일본이 더 어울리는 이름과 구위이기 때문이다. KIA도 일단 크로우 영입으로 한숨을 돌리고 그 다음을 준비하고 있다.
◆ 워싱턴 유망주 출신, 실패와 좌절… 페디와 닮은 크로우
두 선수는 상당 부분 닮은 게 있어 화제를 모은다. 우선 지명이다. 페디는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워싱턴의 1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을 받았다. 모든 선수들의 영광인 '1라운더 출신 선수'라는 타이틀이 달려 있다. 크로우도 2017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워싱턴의 2라운드(전체 65순위) 지명을 받았다. 두 선수 모두 상위 지명자고, 팀이 애지중지하는 선발 자원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선수의 마이너리그 평가 당시는 굉장히 좋았다. 우선 페디가 먼저 팀 내 최고 선발 유망주 중 하나라는 평가를 꿰찼다. 베이스볼 아메리카 등 당시 언론들이 분석한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 'TOP 100'에도 오랜 기간 이름을 올렸다. 크로우 역시 한때 팀 내 유망주 랭킹에서 꾸준히 5위 이내에 정착하는 등 큰 기대를 모았다. 페디는 2017년, 크로우는 2020년 각각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다. 역시 모두 선발 자원이었다.
하지만 이후 생활이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데뷔를 이뤘지만 그 다음 구단의 기대만큼 뻗어나가지 못한 것이다. 우선 페디는 워싱턴이 끝까지 안고 죽으려 했던 유망주다. 2017년 메이저리그 데뷔 후 2018년과 2019년에도 선발 기회를 꾸준하게 줬다. 그리고 2021년에는 29경기(선발 27경기)에 나가며 본격적인 풀타임 선발을 돌기 시작했다. 2022년에도 27경기 출전 모두가 선발 등판이었다.
그러나 성적이 좋지는 않았다. 한계가 있었다. 그래프가 올라가기는커녕 풀타임 경력이 쌓일수록 내리막을 걸었다. 페디는 2021년 7승9패 평균자책점 5.47에 머물렀다. 당시 리빌딩을 하고 있던 워싱턴은 새로운 선발 투수를 영입하는 것보다는 페디에게 계속 기회를 줬으나 2022년에도 6승13패 평균자책점 5.81에 머물렀다. 2년간 선발 54경기라는 비교적 풍부한 표본이 쌓였으나 합계 13승22패 평균자책점 5.64에 그치며 선발 로테이션 사수에 실패했다.
결국 워싱턴은 2022년 시즌이 끝나자 페디와 인연을 정리하고 깔끔하게 포기했다. 페디는 2022년 215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연봉조정자 특성상 2023년 재계약을 하려면 이보다는 더 많은 금액을 줘야 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그만한 값어치는 없다고 생각하고 페디를 논텐더 방출 처리했다. 그렇게 페디는 큰 시련을 맛봤고, 이는 KBO리그 진출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크로우는 2020년 3경기에 나가 선발로 뛰었지만, 당시 1루수가 급했던 워싱턴은 조시 벨을 받는 대가로 2021년 시즌을 앞두고 크로우를 피츠버그로 트레이드했다. 지금의 벨은 내리막을 걷고 있는 선수지만, 당시 벨은 피츠버그의 핵심 타자이자 올스타 선수였다. 벨은 2019년 143경기에서 타율 0.277, 37홈런, 116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36을 기록하며 리그에서 가장 유망한 1루수 중 하나로 발돋움했다.
워싱턴은 1루수가 필요했고, 피츠버그는 이제 자유계약선수(FA) 자격까지 얼마 남지 않은 벨을 잡을 돈이 없었다. 연장 계약에 실패한 피츠버그는 결국 크로우를 받는 대가로 벨을 워싱턴에 보냈다. 사정이 사정이었지만, 벨의 트레이드 반대 급부로 크로우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당시 피츠버그가 크로우를 얼마나 높게 평가했는지는 단적으로 잘 드러난다. 하지만 크로우도 피츠버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크로우는 2021년 피츠버그의 선발 로테이션에 포함돼 26경기(선발 25경기)에 나갔으나 4승8패 평균자책점 5.48에 그쳤다.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가져가기는 무리인 성적이었다. 결국 피츠버그는 크로우의 선발 실험을 포기하고 그를 불펜으로 보냈다. 불펜에서는 나름 필승조급 선수로 활약하며 힘을 보탰다. 2022년 60경기 출전이 이를 상징한다. 2023년에도 불펜에서 활약이 예고되어 있었다.
하지만 2023년 4월 갑작스러운 어깨 통증이 찾아왔고, 크로우는 이후 몇 달간 공을 던지지 못하고 재활에만 매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2023년 메이저리그 출전은 5경기가 고작이었다. 어깨 부상에서 회복해 돌아오니 이미 팀 불펜은 데이비드 베드나와 젊고 공이 빠른 선수들 위주로 재편된 상황이었다. 크로우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한 시즌을 더 끌고 갈 만도 했지만 크로우에 대한 매력을 잃은 피츠버그는 2023년 시즌이 끝난 뒤 그를 방출했다. 이 또한 KIA가 크로우를 영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찬스가 됐다.
두 선수는 모두 우완에 선발 유망주 출신답게 다양한 변화구를 던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포심패스트볼 평균 구속이 비교적 흡사하고, 슬라이더‧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던진다. 두 선수의 투구 로케이션 자체는 조금 다르지만, 스위퍼를 최근 들어 실험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페디는 2023년 시즌을 앞두고 스위퍼를 배워 한국에서 요긴하게 써먹었고, 크로우 또한 2022년까지는 잘 던지지 않던 스위퍼를 2023년 자주 던졌다.
심재학 KIA 단장은 "윌 크로우는 뛰어난 구위가 장점인 우완 투수로, 최고 구속 153km/h의 빠른볼과 슬라이더, 체인지업 등 다양한 변화구가 위력적인 선수이다. 또한 메이저리그에서 풀타임 선발로 활약한 만큼 경험이 풍부해 구단 선발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에이스감으로 데려온 만큼 큰 기대치를 엿볼 수 있다.
물론 페디는 한국 무대에 굉장히 적응을 잘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이기는 하지만 잘 내세우지 않았다. 동료들에게 친근하게 다가섰고, 심지어 다른 팀 투수들이 배움을 청할 때도 흔쾌히 응했다. 시즌 뒤 동료들의 환송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등 정이 많은 투수이기도 했다. 크로우도 어쨌든 KIA와 KBO리그라는 무대 자체에 잘 적응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크로우가 한때 팀 선배였던 페디의 길을 따라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